[폰그림] 지렁이

반말 2013. 10. 18. 21:19



유달리 비가 많이, 오래 왔던 올 여름

화단에 면한 인도에는 무수히 많은 지렁이들이 기어나왔다.

그리고 인파에 밟혀 터져 일부는 아직 살아 꿈틀거리고, 일부는 버려진 구두끈같은 형상이 되었다.


비가 오면,

지렁이가 파들어가서 사는 흙에 물이 차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숨이 막혀 땅 위로 올라오는 거란다.

그리고 다시 들어갈 수 있는 흙바닥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보도블럭을 구분하지 못하고

기어나왔다가 그 길로 엔딩.


물론 운이 좋은 녀석들은 살아남겠지만.


여름에 내가 겪은 일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보겠다고 나온 지렁이들도 남 같지 않고,

터져죽은 지렁이들도 남 같지 않아서

다행히 안다치고 살아있는 녀석들을 보면 집어 근처 풀밭으로 던져주곤 했다.


살아남아. 버텨. 괜히 튀어나와서 죽지 말고.

이런 말을 혼자 중얼거리면서.


일단은 땅 속에 머리를 처박고 살아가고 있는데

이게 나름 괜찮다.

적어도 내 머리 닿는 곳에 있는 흙은 제법 기름져서 살이 오르고,

마음 속의 큰 걱정이 사라진 느낌도 든다.


그러나 결국 이 흙 속에서 만나는 다른 지렁이, 땅강아지, 쥐며느리 등과 부대껴 이겨내야 하고,

10년 15년을 이겨낸다 한들 웬 불도저가 굴러와서 집짓겠다고 쓸어버리면 끝이다.

봐서 비가 적당히 오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다 싶으면 지표를 뚫고 나가는게 맞는걸까.


금요일 밤에 맥주 한잔 마시고 알딸딸.


p.s.1.

AMOLED 스크린에서 보고 그린 그림은 LCD모니터로 옮겨서 보면 채도가 확 죽는다.

왜 삼성은 LCD스크린 모델을 안만드는걸까. 흑.

p.s.2.

찾아보니 노트2 색감을 IPS 모니터와 비슷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만들어주신 분께 감사!  http://goo.gl/h8xJsL




덤. 최재천 교수님 강의 들으면서 끄적이다가 그린 그림.

강의장에서 볼땐 닮게 그렸다 싶었는데 집에와서 보니 또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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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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