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고 싶다.

반말 2013. 3. 27. 21:23
커피를
일할 때 집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맛과 향,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마셔보고 싶다.

음악을
일할 때 외부의 소음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눈을 감고, 음악 속에 빠져들어 들어보고 싶다.

책을
숨듯 화장실에서, 전철에서 읽을 게 아니라
소파에 기대앉아서, 방바닥에 엎드려서
세상엔 이 책밖에 없다는 느낌으로 읽어보고 싶다.

사람을
업무나, 무슨 일이 있어 만나는 게 아니라
그냥 보고싶어서, 놀고싶어서 만나보고 싶다.

컴퓨터 앞에서
이메일, 업무, 논문따위 잊어버리고
오로지 전국통일, 레벨업, 승리, 탐험,
이런 생각만 하면서 밤새 게임을 달리고 싶다.

술도
대학 신입생처럼, 그 자리 자체를 목적으로
새벽까지 아침까지 가끔 박장대소도 하면서
어둔 이야기 없이 마시고 싶고

지리산이든 한라산이든
한참을 걸으면서 들꽃이 보이면 사진도 찍고
땀이 흐르면 웃으면서 닦는김에 숨도 크게 쉬고
꼭대기에서 발 아래 펼쳐진 광경을 보며
마음으로 풍경도 담아보고

그러고 싶다.

가끔 궁금하다.
난 사람인건지.
사람이 아니라 다른 그 무엇이라면,
제대로 기능은 하고 있는건지.

위의 것들을 죄책감 없이 할 수 있으면.
난.

언젠가 아주 오래 전,
15년쯤 전?
비오는 날 창가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뭔가 재밌는 공상을 했던 적이 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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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ga
,

레미제라블, 그 음악

반말 2013. 3. 15. 23:21


이쯤 되면 열병이다.

올해 초, 오랜만에 간 영화관에서 '잘 나가던 영화' 레미제라블을 본 이후로 두 달이 넘었는데

이어폰만 귀에 꽂으면 레미제라블 OST를 재생하고, 

일할때 습관적으로 들러서 켜놓는 Youtube에서도 레미제라블만 찾는다.


내게 음악적 취향이 딱히 있다고 말하기는 힘든데, 굳이 있다면 OST를 좋아하긴 한다.

그래서 90년대 중반 디즈니의 전성기는 내 귀가 가장 신났던 기간이었고

일본 애니메이션중에서도 귀가 풍성한 마크로스 시리즈를 유독 좋아하긴 하지만,

레미제라블이라는 단일 품목이 내 귀를 점령하고 있는 기간과 강도는 이상하게 길고도 강하다.


그 흔한 '장발장' 한권 안읽어본 채로 영화를 봤기 때문에,

장발장이 은촛대 훔치다 걸렸고, 용서받고 회개의 노래를 부를 때만 해도 

"뭐야, 벌써 끝나는거야?" 라고 생각할 정도였고,

가석방 신분증을 찢어버리는 장면에서는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이상의 충격을 받았으니, ("끝이 아니네?" .. --;)

이 영화 전체가 내게 얼마나 큰 충격으로 왔을지는 상상하기 그리 힘들지 않을 듯.

(네. 자베르라는 인물이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프랑스 혁명이랑 연관돼있다는건 상상도 못했구요)


팡틴이 한순간에 머리잘리고, 이가 뽑히고, 몸을 팔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내가 떨어지는 것 같았고

장발장이 자베르와 만나는 순간들에서는 알아보면 어쩌나, 정말로 잡아가면 어쩌나 조마조마.

에포닌은 왜 저렇게 바보같이 착한지,

앙졸라는 왜 저렇게 순수하게 뜨거운지,

남자주인공이라는 마리우스는 왜 저렇게 중심 못잡고 왔다갔다 하는지.

가브로쉬는 왜 저렇게 귀엽고 민첩하고 영리한지.

자베르는, 악역이라고는 하나 신념이 멋지고 연민이 느껴지는...

그리고 얄밉지만 유쾌한 테나르디에.


영화를 마치고 나올 때는, 장발장과 함께 저 시대를 옆에서 고스란히 함께 산 느낌마저 들었다.


문제(?)는 영화를 본 다음날부터.

영화관에서 한번 봤을 뿐인 음악이 머릿속에서 반복재생되고, 심장은 음악에 박자를 맞춰 뛴다.

특히, 앙졸라와 마리우스가 ABC의 벗들과 함께 부르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미친듯 들었다.

미친듯 출근길 퇴근길에 아무도 없는 골목을 걸으면서 혼자 작게 불렀고,

미친놈처럼 음악을 들으면서 울었다. 

영화를 볼 때는 한방울도 안나오던 눈물이 음악을 들으면서 나오는데 왜 그러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더라.


혁명 전에 

"Do you hear the people sing? Singing the songs of angry man, 

It is the music of the people who will not be slaves again." 이라고 부르는 노래에도 가슴이 뛰었지만,


피날레에 같은 곡에 가사만 바뀐

"Do you hear the people sing? Lost in the valley of the night.

It is the music of a people who are climbing to the light.

For the wretched of the earth. There is a flame that never dies.

Even the darkest nights will end and the sun will rise.

(...)

Somewhere beyond the barricade is there a world you long to see?" 에서도 눈물이 주루룩.


어느 정도였냐면,

공군이 만든 코미디 패러디물 '레밀리터리블'의 엔딩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


"장병들의 노래가 들립니까 비행단에..." 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 나는 뭘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한참을 이 노래에 꽂혀서 살았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 노래, 저 노래를 옮겨다니면서 웃었다 울었다.


Stars의 순수함과 비장함에,

One day more의 긴박감과 각자의 사정 또는 열정에,

On my own과 A little fall of rain에서 느껴지는 에포닌의 마음에,

Master of house와 Beggars at the Feast에서 느껴지는 억척스러움에.


이 과정에서 영화OST를 아직 구하기 힘들었던 관계로,

반한건 영화지만 정작 빠져들었던 뮤지컬 음악.



영화에서 본 Samantha Barks가 라이브로 외치는 노래도 좋았고

영화에서 뮈리엘 주교로 나오던 Colm Wilkinson이 펼치는, 휴 잭맨과는 너무도 다른 장발장,

그리고 진짜 테나르디에를 갖다 세워놓은 듯한 Alun Armstrong: 영화보다 100배쯤 잘 어울린다.


유튜브에서 어떻게어떻게 퍼온 음악들을 듣고 다니다가

아내가 생일선물로 레미제라블 DVD며 CD들을 사준 이후로 제대로 리핑해서 듣고 있는데,

수십, 수백번을 같은 음반을 들으니 잘 들리지조차 않던 가사를 외울 지경이 되어가고

조연급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에도 정감이 커진다. 

"You at the barricade listen to this!"를 외치는 장교라던가,

테나르디에와 함께 장발장 집을 털려는 도둑 친구들이라던가.


모르겠다.

이 열병이 언제쯤 가라앉을지.


지금은 여관집 주인, 테나르디에한테 빠져있다.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캐릭터. 

큰 욕심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해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을 하고 시체를 뒤져 귀중품을 챙기는.


내가 저 시대를 살았더라면 가졌을,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소시민으로서의 내 모습과 가장 근접한 캐릭터가 아닐까.

조금 젊었다면 마리우스와 가까웠을 테고,

먹여 살릴 식솔이 있었다면 테나르디에와 가까웠을 테고.


뮈리엘 주교처럼 고결하지도 못하고,

자베르처럼 심지가 굳지도 못하고,

앙졸라처럼 혁명을 꿈꾸지도 않고,

장발장처럼 순수하지도 않은 사람.


적당히 위장전입도 하고, 적당히 투기도 하고, 적당히 촌지도 찌르고.

그렇게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그러지 않았을까.


아래의 영상은

West End 뮤지컬 레미제라블 10주년 기념 공연을 마치고

17개국 17명의 장발장들이 자기 나라의 언어로 부르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조금 들리는 일본어와 독일어에 다시한번 감동.

한국어가 없는게 매우 아쉽다.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p.s.1.

나보다 더 제대로 꽂힌 어떤 분의 블로그 : http://blog.daum.net/nasica/

이 분의 해박한 지식과 집중적인 탐구 덕에 궁금했던 것들이 거의 모두 풀렸다.

나도 언젠가는 원전을 읽어봐야 할텐데.


p.s.2.

비록 지금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떳떳하고자 하지만,

이는 학교의 가르침이나 종교의 교리때문이라기보다는 사소한 줄 알았던 흠집으로 얼굴에 먹칠을 하는,

주요 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느낀 점 때문이 더 크다.


1800년대 중반의 프랑스에선 그런 기회가 없었을 것이기에.

부잣집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욕망은 강하기에.

그렇기에 테나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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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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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게 사는 맛

반말 2013. 3. 5. 15:30


학회장 화면에 떠있는 내 이름.

발표자는 면식이 없는 박사님.


그리고,

포스터 발표장에서 날 드디어 만났다고 좋아하던 한 박사과정 학생.


이럴 때 힘이 나고 기운이 나는거지.


이 친구들과 꾸준히 연락해야지.

사는 이야기도 듣고,

재밌는 연구 이야기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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