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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3. 3. 04:24

외국에 몇년간 살 무렵,

졸업, 결혼, 세미나 등으로 한국에 잠시 다녀갈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한국에 오고 나서 사흘만 되면 영어에 대한 감을 확 잃어버린다는 사실에 몹시 놀라곤 했다.


알제리의 수도가 어디냐 뭐 이런 단편성 지식도 아니고,

생활의 일부분인 언어를 이렇게 쉽게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는데

한편으로 몇년만에 참석한 국내 학회에서, 우리말로 발표를 하려니 말이 앞뒤가 안맞고 두서가 없어 심히 괴로웠다.

우리말로 정상적인 발표를 할 수 있게 되는데 한 6개월 걸리더만.


회사원이 된지 두 달이 지났고, 그 동안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커다란 변화 중 하나는 내 노트북을 건드리는 시간.

하루에도 10시간 이상 끼고 살던 노트북을 일주일에 한번 정도, 그것도 잠시밖에 사용하지 않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그때마다 천둥새는 150통이 넘는 메일을 끌어안고 힘들다고 끽끽 울어대고,

인터넷 화면은 아내가 사용하는 모드로 세팅이 되어있어 몹시 어색하고,

분명히 완전히 적응했던 울트라북의 얄팍한 키감은 참으로 낯설다.


1만시간의 법칙 이런 말이 있는데

무언가를 잘 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눈감고도 해낼만큼 익숙해지는게 전제가 되어야 할게다.

생활리듬을 다시 잡아야겠다.

이 노트북의 키보드가 다시 예전처럼 익숙해질 수 있도록.


분위기 전환용으로 새로 바꾼 윈도 바탕화면.

출처는 http://mi9.com/ . 괜찮은 그림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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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계사년(癸巳年).

뱀띠 해.


늘 그렇듯 올해도 올해의 동물, 뱀 그림을 한장 그려봤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해 바라는 일, 꼭 이루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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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s  (0) 2013.04.28
Posted by P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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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그림

반말 2012. 9. 3. 14:20

작년 9월 말 핸드폰을 스마트폰(갤S2)으로 바꾸고 나서, 이걸 어떻게 하면 좀 잘 써볼까 싶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적어도 남들처럼 게임기나 동영상 플레이어로만 쓰기엔 매달 내는 수만원의 요금이 너무 아까워서이기도 했고,

podcast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이 넓은 스크린으로 뭔가 하고싶기도 했다.


당시 구글 마켓 (현 Google Play)에서 일주일이었나? 일정 기간동안 앱 몇 개를 골라 10센트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에 파는 행사를 했었는데,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는 도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AutoCAD로 유명한 Autodesk사에서 만든 Sketchbook mobile (http://goo.gl/xVwiv).


처음들어보는 회사라면 좀 망설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워낙 좋아하는 회사라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결제를 했다.


설치하고 보니 브러쉬 종류와 굵기, 투명도, 색을 적절히 고른 뒤 터치를 해서 그림을 그리는 앱.

끄적끄적 하는게 재밌기는 했지만 손가락이라고 하는 기기(!)의 특성 탓도 있고 

(내가 어디 점을 찍는지 손가락에 가려 보이지가 않는다!)

막상 뭔가를 그릴려니 뭘 그릴지도 잘 모르겠고 해서 한동안 묵혀뒀었다.


그러다 처형댁에 놀러갔다가 다섯살짜리 조카를 데리고 뭘 할지 모르겠어서 그림을 그렸는데,

당시 그린 그림들을 보면 참 조잡하다.


[2012년 1월 24일. 고래아가씨]

- 채색따위 없다. 윤곽선으로만 그렸을 뿐.


[2012년 1월 24일. 나무와 새]

- 일단 나무를 내가 그리고 옆에 새를 어떻게 그릴지 조카에게 물어봤다.

- 조카가 그리라는 곳에 그리라는 색으로 그렸는데 그리고보니 진보신당 마크 비스무리;


손가락으로 끄적이면서 어쨌거나 작품(?) 몇 개를 완성하다보니 사용법이 좀 익숙해졌고,

추웠던 2월, 퇴근하고 자정 가까이 집에 들어가는 길이 왠지 적적해서 그림을 그려봤다.



[2012년 2월 3일. 집에 가는 길]

- 2호선 전철이 신림역에서 신대방역으로,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길 바깥 풍경을 보면서 그린 그림.

- 그림을 그리겠다는 목적보다는 기분풀이, 심심풀이로 그린 그림이라 사실 정성을 들였다고는 말하기 힘든데, 페북에 무심코 올렸더니 호응이 좋았다.  


재미가 붙어 폰그림 연습이라는 걸 시작해봤고



[2012년 2월 6일. 겨울산]

- 친구가 스위스 여행갔다가 찍은 융프라우를 떠올리면서 그렸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그림.

- 이런저런 브러쉬를 써보는 것 자체가 주 목적이었다.

- 아내를 신도림역에서 기다리면서 그렸는데, 흔들리지 않는 곳에서 제법 오래(?) 있던지라 이것저것 많이 해봤다.


[2012년 2월 9일. 알]

- 명암 연습을 해보겠다고 그린 그림.

- 원래 그리려던 건 알이 아니라 앵그리버드 중 터치하면 알을 투하하는 하얀 새였다.

- 그리다 보니 알 자체로 괜찮은 것 같아 아예 둥지까지 그리고 제목도 알이라고 붙였다.


적절히 확대/축소를 하면서 세부를 그리고, 레이어를 이용해서 그림을 겹쳐그리는 법이 손에 조금씩 익어가면서 손가락으로 그리는 그림 치고는 제법 정교한, 마음에 드는 그림도 나오기 시작했다.



[2012년 2월 28일. 앵그리버드]

- 앵그리버드는 당대 최고의 인기게임이기도 했고, 디자인도 할만 하다 싶어 꼭 그려보고 싶었다.

- 막상 손을 대보니 생각보다 복잡해서 한차례 포기도 했었지만, 다시 도전해서 그려낸 그림.

- 저 눈을 그리는데 레이어가 4개던가, 저 부리를 그리는데 레이어가 6개던가 동원되었다.


[2012년 3월 6일. 부활절 토끼 인형]

- 이건 전철에서 그리지 않고, 집에 와서 내 책상에 앉아 그렸다.

- 쇤브룬 부활절 장터에서 사온 토끼인형을 보고 그린 그림.


폰그림 시작 한달만에 나온 결과물치고는 맘에 드는데, 문제는 여전한 손가락 굵기.

아내와 함께 교보에 놀러가는 겸 해서 터치펜을 샀다. 만 3천원인가 하는 보통 모델.



[2012년 3월 13일. 산토리니]

- 처남이 페북에서 팔로우하던 한 화가의 그림을 기억해 그린 그림.

- 터치펜이 있다고 곧장 그림이 술술 나오는 건 아니었다.



[2012년 3월 15일. 다이버]

- 뉴스에서 본 장면이 너무 예뻐서 그려보고 싶었다.

- 배경에 터치를 한 첫번째 작품.


거의 모든 작품이 1시간 20분 정도의 퇴근시간을 이용하여 그려졌는데, 시간이 더 주어진다고 그림을 더 잘 그리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짧은 시간 덕택에 이 안에 뭔가를 집중해서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느낌.


터치펜이 손에 들어온 이후는 그림에 사람 모양의 형체를 넣고 있다.

사람이 그림 안에 있으면, 내 감정이나 기분을 이 녀석의 동작이나 표정 등에 투영할 수 있어서 나도 재밌고, 보는 사람도 내가 무슨 생각, 무슨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2012년 3월 24일. 이여업!!]

-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뭔가 기운나는 일이 있었다. 신나서 그린 그림.



[2012년 8월 2일. 더워요. 잘못했어요.]

- 연구실 워크샵을 마치고 오는 길, 다들 물놀이를 하는 중에 그린 그림.

- 양수리 풍경을 그릴려다가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에 그림 주제를 아예 바꿔버렸다.


조금이나마 마음먹은 대로 그림이 나오니,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 주고 싶을 때 그림을 사용하게 됐다.



[2012년 3월 29일. 건강바둥]

- 갑상선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한 동생에게.


[2012년 4월 7일. 마녀]

- 마녀가 나오는 동화책이 망가진 아내의 조카에게.


[2012년 4월 18일. 청혼반지]

- 결혼 3주년을 맞은 아내에게.


[2012년 5월 15일. 카네이션]

- 고마운 선생님들에게.


작은 재주지만, 생각과 마음을 전할 방법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4월까지는 퇴근과 동시에 핸드폰과 터치펜을 빼들었지만, 

눈이 뻐근해져서 뜨기조차 힘들어진 경험을 몇번 한 뒤로는 요새는 일부러 드문드문 그리고 있다.

일을 할 때마다 혹사당하는게 눈인데 집에 가는 길에라도 좀 쉬라고.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정리를 했는데,

8월 말일까지 약 반년동안 그린 그림이 41장.




앞으로 더 큰 그림, 더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고, 그래서 이번에 구글이 새로 출시한 Nexus7이 탐난다.

하지만 지금의 퀄리티로 4인치짜리 작은 공간을 채우는 데도 한시간 반이 빠듯한데 7인치, 또는 10인치 화면을 더 높은 퀄리티의 그림들로 채우려면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할지. 


내 이성의 끈이 아직은 튼튼하게 지름신의 강림을 막고 있다.



더 좋은 그림들을 보고 배워보려고 찾아봤더니, flickr에 스케치북 그룹이 있다. (http://www.flickr.com/groups/sketchbookmobile/)


핸드폰으로 그린 그림들은 못봤고 거의 ipad로 그린 그림들을 올려주시던데, 이 가운데 내 그림도 주목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욕심을 가져본다.


[2012년 8월 30일. 그래, 또 온다 이거지.]

- 태풍 볼라벤이 지나간 직후 태풍 덴빈이 연달아서 온다는 뉴스를 보고.


살다보면 그림그리기 힘든 날도 많을 거고 다른 일로 바쁜 날도 많겠지만,

내가 가진 몇 안되는 재주 중 하나다.


평생의 취미가 되면 좋겠다.

나중엔 아이들이랑도 같이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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