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45건

  1. 2013.10.18 [폰그림] 지렁이 2
  2. 2013.10.14 [책] 독일인의 사랑
  3. 2013.10.11 [폰그림] 녹차
  4. 2013.10.05 변화 2
  5. 2013.09.17 굿바이, 갤럭시S2 8
  6. 2013.09.10 폰그림 - 촛불
  7. 2013.09.07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8. 2013.09.03 화를 잘 안내는 사람의 문제는... 2
  9. 2013.08.28 퇴근버스
  10. 2013.08.10 레미제라블 뮤지컬 (한국판) 관람 4

[폰그림] 지렁이

반말 2013. 10. 18. 21:19



유달리 비가 많이, 오래 왔던 올 여름

화단에 면한 인도에는 무수히 많은 지렁이들이 기어나왔다.

그리고 인파에 밟혀 터져 일부는 아직 살아 꿈틀거리고, 일부는 버려진 구두끈같은 형상이 되었다.


비가 오면,

지렁이가 파들어가서 사는 흙에 물이 차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숨이 막혀 땅 위로 올라오는 거란다.

그리고 다시 들어갈 수 있는 흙바닥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보도블럭을 구분하지 못하고

기어나왔다가 그 길로 엔딩.


물론 운이 좋은 녀석들은 살아남겠지만.


여름에 내가 겪은 일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보겠다고 나온 지렁이들도 남 같지 않고,

터져죽은 지렁이들도 남 같지 않아서

다행히 안다치고 살아있는 녀석들을 보면 집어 근처 풀밭으로 던져주곤 했다.


살아남아. 버텨. 괜히 튀어나와서 죽지 말고.

이런 말을 혼자 중얼거리면서.


일단은 땅 속에 머리를 처박고 살아가고 있는데

이게 나름 괜찮다.

적어도 내 머리 닿는 곳에 있는 흙은 제법 기름져서 살이 오르고,

마음 속의 큰 걱정이 사라진 느낌도 든다.


그러나 결국 이 흙 속에서 만나는 다른 지렁이, 땅강아지, 쥐며느리 등과 부대껴 이겨내야 하고,

10년 15년을 이겨낸다 한들 웬 불도저가 굴러와서 집짓겠다고 쓸어버리면 끝이다.

봐서 비가 적당히 오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다 싶으면 지표를 뚫고 나가는게 맞는걸까.


금요일 밤에 맥주 한잔 마시고 알딸딸.


p.s.1.

AMOLED 스크린에서 보고 그린 그림은 LCD모니터로 옮겨서 보면 채도가 확 죽는다.

왜 삼성은 LCD스크린 모델을 안만드는걸까. 흑.

p.s.2.

찾아보니 노트2 색감을 IPS 모니터와 비슷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만들어주신 분께 감사!  http://goo.gl/h8xJsL




덤. 최재천 교수님 강의 들으면서 끄적이다가 그린 그림.

강의장에서 볼땐 닮게 그렸다 싶었는데 집에와서 보니 또 아닌 듯;;






'반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넘을 때.  (4) 2013.11.06
[폰그림] 월급날  (2) 2013.10.21
[책] 독일인의 사랑  (0) 2013.10.14
[폰그림] 녹차  (0) 2013.10.11
변화  (2) 2013.10.05
Posted by Pega
,

[책] 독일인의 사랑

반말 2013. 10. 14. 21:48
얼마만일까. 이런 책을 읽은 게.

종이책보다 인터넷을, 인터넷보다 스마트폰을 가까이 하면서 내 대뇌는 파편화되었고,
파편화된 뇌는 몇 줄로 길게 쓰인 감정과 장면의 묘사를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옮긴 회사에서 제공하는 전자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고, 일부러 읽었다.
세상에 내가 알지 못하는 면이 많다는 걸 깨닫고 나서, 내가 모르는 것이 분명한 세계를 엿보고 싶었다.
그나마 책이라는 매체는 오랫동안 가까이 해 온 낯익은 것이라 어색한 세상을 조금은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줄을 이어가는 감정과 인용, 장면과 마음의 서술은 역시 불편했다.
논문에서 데이터를 찾아읽는데 익숙해져있던 내 눈은 '그래서 어쨌다고'를 수십번 외치며 페이지 끝으로 달려갔고,
이 상황에서 이런 비유를 들고 저 책의 몇 장을 읽어보라는 주인공들의 대화는 연극적이라 와닿지 않았다.

그래도 스마트폰으로 144페이지라는, 
길다고도 볼 수 없지만 요새 읽는 글보다는 몇배나 긴 분량을 꾸역꾸역 따라갔더니
작위적으로 보이던 주인공의 서사에서 진심이 느껴졌고,
동화속 주인공같은 여주인공의 말 속에 담긴 애틋함과 두려움도 느껴졌다.

한 권을 채 읽기 전에 대체 이건 뭐길래! 하는 마음에 <독일 신학>을 검색했지만. 
이 정도의 산만함과 호기심은 너그럽게 넘어가도록 하자.

책 한권으로 감성을 찾았다면 오버겠지만,
책이 끝나갈때쯤 카페에서 나온 곡들이 오랜만에 가슴에 들렸다.








'반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폰그림] 월급날  (2) 2013.10.21
[폰그림] 지렁이  (2) 2013.10.18
[폰그림] 녹차  (0) 2013.10.11
변화  (2) 2013.10.05
굿바이, 갤럭시S2  (8) 2013.09.17
Posted by Pega
,

[폰그림] 녹차

반말 2013. 10. 11. 19:26



바람이 쌀쌀...

이럴 땐 따뜻한 녹차 한 잔이 좋다.


갤럭시 노트로 그린, 제대로 된 첫번째 그림.

노트2, 제법 쓸만하다.



'반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폰그림] 지렁이  (2) 2013.10.18
[책] 독일인의 사랑  (0) 2013.10.14
변화  (2) 2013.10.05
굿바이, 갤럭시S2  (8) 2013.09.17
폰그림 - 촛불  (0) 2013.09.10
Posted by Pega
,

변화

반말 2013. 10. 5. 03:10

보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집도 이사를 했고

회사도 이사를 했다.

집은 한 번이지만 회사는 두 번이나.


같은 처지의 동기가 '꿀빨고 있다'고 표현한,

일은 안하면서 월급은 따박따박 받아가는 상태가 몇 달을 이어지다가

오랜만에 일이라는 걸 좀 해 보려고 하고,

출근까지 한시간 반이 걸리던 회사는 30분이면 도착한다.


저녁은 집에 와서 먹을 수 있고,

저녁을 준비해주는 아내 옆에서 뭐라도 하며 일을 돕고

밥을 먹은 다음엔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참 나눠도 

그 전 같았으면 칼퇴근을 해도 지친 몸을 끌고 집에 들어오던 저녁 8시, 9시.


오가는 한시간씩의 나홀로타임은 잃었지만

효율적인 삶의 패턴을 얻었고, 가족의 온기를 찾고 있다.

회사에서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기대감과 의무감, 책임감을 동시에 부여받아

오랜만에 긴장이 되어, 굼뜬 동작도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그런데 내가 조금 변한 것 같다.

회사생활에 젖어들어간다고 하면 표현이 딱 맞을 듯.

가슴 속에 불이 없는 건 아닌데

불을 찾기가, 불을 켜기가 귀.찮.다.

꼭 그.래.야.하.나. 싶다.


얼마 전 다시 본 미생 첫 화의 대사가 남같지 않다.


"

나는 변한게 없다. 없어야 한다.

너희들만 변한 것이다.


열심히 안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해서인걸로 생각하겠다.


기재가 부족하다거나 운이 없어 매번

반집차 패배를 기록했다는 의견은 사양이다.


바둑과 알바를 겸한 때문도 아니다.

용돈을 못주는 부모라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자리에 누우셔서가 

아니다.


그럼 너무 

아프니까.


그래서 난 그냥 열심히 하지않은

편이어야 한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으로 나온거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 뿐이다.

"


'반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독일인의 사랑  (0) 2013.10.14
[폰그림] 녹차  (0) 2013.10.11
굿바이, 갤럭시S2  (8) 2013.09.17
폰그림 - 촛불  (0) 2013.09.10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0) 2013.09.07
Posted by Pega
,

굿바이, 갤럭시S2

반말 2013. 9. 17. 23:29


내 첫 스마트폰인 갤럭시S2를 오늘 떠나보내고,

새로운 식구인 갤럭시노트2를 들였다.


핸드폰을 바꾼 경험이라면 최초의 핸드폰이었던 한화G2를 시작으로

액정이 폴더 밖에도 있던 KTF의 Neon, 제법 잘나갔던 Anycall의 얇은 금색 모델,

윤도현이 so cooooooool!을 외치던 시기의 팬큐도 약정따라 옮겨다니며 써봤지만,

이번 스마트폰은 전화와 문자 외의 이것저것을 많이 함께해서인지 오랜 친구를 멀리 보내는 느낌이다.

실상은 딱 24개월 사용했으면서.


2년간 써본 결과, 갤럭시S2는 정말 잘 만든 스마트폰 맞다.

2011년 당시로선 최신 플랫폼인 안드로이드 진저브레드를 물고 나와서,

상큼한 이미지의 아이폰을 뒤에서 따라가며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젤리빈까지 먹었다.

전작인 갤럭시S가 새로 나오는 안드로이드를 감당하지 못하고 허덕거릴 땐 젊은 허리로 이를 받쳐줬으며,

뒤이어 갤럭시S3, S4가 나와도 기변의 욕심을 딱히 느끼지 못할 만큼 

3G 무제한 요금제에 올라타 업무와 여가 양면에서 든든한 역할을 했다.


퇴근버스에서 이걸 가지고 원격으로 python 코딩도 했고,

dropbox를 이용해서 논문의 원고와 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수시로 확인했으며

비행기에서는 훌륭한 소설책과 동영상 재생기,

화장실에서는 새들을 날리는 게임기가 되어 주었다.

podcast와 phys.org  등으로 재밌는 과학계 소식을 잃지 않았으며,

지금은 접었지만 twitter와 facebook으로 1년에 한번 보기 힘든 친구들과의 연이 끊기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지난 2년간 완성한 폰그림 58장. 얼추 한달에 세 장.

그림을 제대로 취미로 삼은 분들이 보기엔 뭐가 많냐고 할 수도 있으나 산만한 연구원에겐 상상하기도 힘든 숫자.



그림이라는 것이 참으로 정적인 취미인데다 한 번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도 길어서,

엉덩이에 땀띠가 나던 고3때 이후로 이렇게 그림을 많이 그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고,

그저 연습장 귀퉁이에 끄적거리는 심심풀이 정도로 전락(?)해 있던 내 그림이

한시간 반이라는 적잖은 통근시간 덕에 제법 맘에 드는 형상을 많이 갖췄다.


갤럭시노트 시리즈처럼 S노트와 S펜은 갖추지 않았지만

100원주고 산 Sketchbook 앱은 10만원 이상의 성능을 발휘해줬고,

만3천원 주고 산 러버듐 터치펜은 주변의 갤노트 유저가 하나도 부럽지 않게 해 주었다.


내부 회로 어딘가가 녹슬었는지, 

비만 오면 이상동작을 해대는 통에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임무를 맡길 수가 없어서

마지못해 교체하지만,

확신컨대 비오는 날에만 멀쩡했어도 1년은 더 썼을 스마트폰이다.


새로 갤노트2가 쥐어졌으니 이젠 이 친구랑도 잘 지내야겠지.

하지만 너와 함께 했던 2년은 참 즐거웠다.

널 길들이려다 내가 너한테 길들여진 것 같다.

그간 수고했다. 이젠 편히 쉬렴.

2013년 4월 28일에 그린 [장미와 여우].

Petit France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린 그림.







'반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폰그림] 녹차  (0) 2013.10.11
변화  (2) 2013.10.05
폰그림 - 촛불  (0) 2013.09.10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0) 2013.09.07
화를 잘 안내는 사람의 문제는...  (2) 2013.09.03
Posted by Pega
,

폰그림 - 촛불

반말 2013. 9. 10. 20:11


날이 점점 어두워진다.
이 불이 꺼지지 않으면 좋겠다.

'반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화  (2) 2013.10.05
굿바이, 갤럭시S2  (8) 2013.09.17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0) 2013.09.07
화를 잘 안내는 사람의 문제는...  (2) 2013.09.03
퇴근버스  (0) 2013.08.28
Posted by Pega
,
십자군 이야기 세트 - 전3권 - 10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문학동네



종교는 세속의 정치와 경제에 얼만큼 영향을 관여해야 할까.

산 속이나 수도원에 틀어박혀 세상과는 관계없이 진리를 구하고 구원을 기도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옳지 않은 일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할까.


내 의견을 먼저 말한다면, 적어도 그리스도교의 경우 후자가 옳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지 이유를 말하기 시작하면 그것만으로도 글이 매우 길어지므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자.

짧게만 언급하자면 세상 일의 논리로는 채워지지 않는 가치를 종교를 통해 채울 수 있고, 

그러려면 종교가 세속과 분리되어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와 의견이 반대인 분들도 적잖이 있는데, 이 분들의 말씀도 무턱대고 반대할 수는 없는 것이

내 주장은 종교인들이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옳을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종교인들이 꼭 그랬던 것만은 아닌 것이 사실이다.


십자군은 교황권이 황제권을 능가하던, 그러나 황제권도 약하지만은 않았던 시기.

유럽은 그리스도교, 동로마 제국을 제외하면 그 중에서도 가톨릭으로 거의 획일화가 되어 있었고

이베리아반도부터 북아프리카를 거쳐 아나톨리아 반도에 이르는 곳은 이슬람으로 확일화가 되어 있어,

흰색이 아니면 검정으로 세상을 보기 딱 좋았던 시기에


세상 일에 관심이 참 많던 교황이 주창을 하고,

황제와 왕, 제후와 기사, 상인과 민중이 각자의 사정으로 깊이 얽혀들어간 200년간의 역사다.


1차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 왕국은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매우 유사하고

이를 둘러싼 세계의 구도 또한 천년 전의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성전을 선포했는데

상업은 예전보다 더 끈끈하게 서로를 묶어놓고 있어

천년 전과 달라진 것은 무기뿐인 것 같다.


십자군과 이슬람군이 서로를 지구상에서 없애버리려 할 때 그들의 성지는 지옥이 되었고,

살라딘과 프리드리히2세가 서로를 인정하고 예의를 갖출 때 그들의 성지는 인파로 붐볐다는 사실을

언젠가 한번쯤은 다들 배웠을텐데, 


싸우느라 바빠서 모두 잊어버린 것일까.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반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굿바이, 갤럭시S2  (8) 2013.09.17
폰그림 - 촛불  (0) 2013.09.10
화를 잘 안내는 사람의 문제는...  (2) 2013.09.03
퇴근버스  (0) 2013.08.28
레미제라블 뮤지컬 (한국판) 관람  (4) 2013.08.10
Posted by Pega
,
화를 평소에 잘 내지 않는 사람의 문제는
혼자 속병을 앓는다던가
남들이 만만하게 보기 쉽다던가
이런 것 보다,

화를 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바람에
진짜로 화가 날 때 어찌해야 할 지 몰라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감정이 이상하게 표출돼
본인도 불편한 상태가 오래 가고,
주변에 오해를 끼쳐 결국 스스로에 대해
이상한 판단을 일으키는게 아닐까 싶다.

장기적인 문제를 야기할 뿐더러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 바로잡기도 힘들거든.

덴마에 나오는 이브가 슬플 때 웃듯이,
웬만큼 화가 나면 웃음이 나는 난
(뇌 어딘가 고장난걸까?)
의외로 참 많은 오해를 양산하고 다닌다 싶다.

화를 내는 것도 연륜이고
협상의 주요한 기술일텐데
기분이 나쁘다며 허허 웃고있으니
감정이 제대로 전달될리가.

사람 사이에 살기.
이것도 연습을 해야 하는건가.

'반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폰그림 - 촛불  (0) 2013.09.10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0) 2013.09.07
퇴근버스  (0) 2013.08.28
레미제라블 뮤지컬 (한국판) 관람  (4) 2013.08.10
벼룩이 무릎을 꿇고 뛰는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  (0) 2013.08.05
Posted by Pega
,

퇴근버스

반말 2013. 8. 28. 20:04
칼퇴근을 하는 날이면,
너 오늘 일은 다 마쳤냐는
꾸지람을 듣는 것처럼 환해
마음이 불편하던 퇴근버스의 창 밖이,

요 몇주 정신을 못차린 새
책을 보기 불편할 정도로 어둑해졌다.

입사를 한지 8개월이 지나가고.
그동안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있고.

내가 겪는 어려움은 그저 내 탓이려니.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 뭘 바랄까.

천장의 희미한 조명때문에
묘하게 나직한 퇴근버스 속에서
하루에 지친 사람들이 쳐다보는 건 스마트폰.
무슨 사진을 게임을 동영상을 카톡을 하는지
어두운 실내덕에 저 멀리 앉아계신 분까지 잘도 보인다.

뒷자리 사람에게 내 화면도 보이겠지.
뭔진 몰라도 하얀 화면에 까만 글자를 박아대는 모습.
참 촌스럽겠다. ㅎㅎ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마친 오늘.
흙묻은 군화와 초소 속에서 모기에 물린 팔을 들고 가는 길.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잘 견뎠다.
토닥토닥.
Posted by Pega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20:00 공연.

6시 30분 퇴근버스를 타고 부랴부랴 달려왔는데,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한주간 사람을 산채로 쪄버릴 것 같은 날씨에 체력적으로도 많이 지쳐있었고,

이래저래 일들이 많아 정신적으로도 반쯤은 탈진상태여서 그냥 표를 다른 분께 양도를 해드릴까 했는데

퇴근 버스에서 완전 정신을 놓으며 체력을 회복하고 그냥 갔다.


티켓 가격은 1인당 2만원, 좌석은 3층 2열 맨 왼쪽 귀퉁이 두 자리.

공연 자체는 2만원이 아니었지만, 좌석의 위치를 합치면 2만원이라는 가격이 딱 적정했던 공연.

무대 전체가 잘 보였고 소리도 결코 문제없이 잘 들렸지만, 배우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서. - 이거 크더라.


무대는 생각보다 작았다.

그간 내가 봤던 레미제라블이 올해 개봉한 영화, 10주년 및 25주년 기념 콘서트라서

유달리 큰 공연만 봤던건지, 무대를 보고 '엇 작다' 하는 생각이 제일 처음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오스트리아 빈에서 봤던 마술피리의 무대도 결코 이보다 더 크진 않았더랬다.


아마 이게 정상적인 크기겠지.


처음 30분간은 실망의 연속.

배우들 얼굴은 안보이지, 목소리에 비해 오케스트라 소리가 너무 크다 싶었지,

게다가 왜 이렇게 진행은 성급하게 하는지.

비교적 초반에 나오는 I dreamed a dream에서 아무 감흥을 못느낄 정도.


전개 속도가 상당히 왔다갔다 하다가, 팡틴이 죽을 때쯤 정상을 찾았으나

분위기를 환원해줄 테나르디에의 master of house에서 다시 산만. 

임춘길 배우의 연기가 아쉬웠지만, 이게 곡도 어렵고 가사도 어렵고 진짜 어려운 장면이기도 하다.

10주년 기념 공연에 등장했던 Alun Armstrong을 제외한 모든 Master of House는 사실 죄다 실망.

- 심지어 25주년 기념 콘서트도 별로. 테나르디에는 오리지널 멤버인 Alun Armstrong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 이광수를 닮은, 2013년 영화판에서의 Sacha Baron Cohen도 독특한 맛은 있지만 그것뿐.


다행히 마담 테나르디에를 맡은 박준면 배우가 원작에 충실한 연기로 분위기를 엄청 잘 살려줬음.


역대 최고의 테나르디에, 그리고 역대 최고의 Master of House. 이 사람은 그냥 테나르디에 자체.

마담 테나르디에, Jenny Galloway야 말할 것도 없고.


혁명분위기가 나오면서 분위기는 극의 전개 속도도, 배우들의 연기도 뭔가 안정을 찾은듯한 느낌.

특히 가브로쉬를 맡은 탕준상 배우.

이제까지 봤던 모든 가브로쉬 중에서 단연코 최고다.

다소 늘어진 전개에 피곤했던 사람들이 이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자베르역을 맡았던 문종원 배우가 부상으로 2주간 쉬게 된 바람에 

앙상블에 있던 김용구 배우가 새로 자베르를 맡았는데,

갑자기 배역이 바뀌어서 그런지 혼자 있을 땐 잘 했지만 장발장과 격투신이라던가, 합을 맞추는 부분은 좀 아쉬웠다.


장발장을 맡은 정성화야 말할 것도 없고,

에포닌을 맡은 박지연, 앙졸라를 맡은 김우형 배우는 완전 안정적인 연기.

전체적으로 매우매우 만족한 공연이었으나...


가사는 절반정도는 만족,

절반정도는 내가 다시 써주고 싶을 정도의 에러에러에러.

원 가사의 뜻을 살리면서 운율까지 맞추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한다, ~한다, ~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건 좀 그렇고

노년의 장발장에게 앙졸라와 마리우스는 어찌나 예를 잘 갖추던지, ~해요, ~해요, ~해요.


One day more나 On my own 같은 음악은 정말 잘 바꿔놨던데,

브리지 곡들은 정말 답답할 정도로 못바꾼 느낌이... 

번역을 다른 사람들이 맡아서 했나 싶을 정도로 일관성이 없었다.


레밀리터리블로 유명했던 공군 홍보팀이 얼마나 개사를 잘 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으니까.


뮤지컬 시장이 크지 않아서 다들 고생을 많이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좋은 공연 만들어줘서 고맙지만 가사 번역에 좀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싶다.


p.s.

긴 공연이 끝나고 나니 밤 11시.

합정역까지 전철로 와서 택시를 타려는데 그 시간에도 날씨는 찜질방.

택시들은 사람을 얼마나 가리는지, 콜택시를 불러서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이 날씨가 이제 보통의 여름날씨가 된다는데, 대 격변이 일어나겠어...


Posted by Pega
,